배달호, 김주익

By Hurd

노무현 추모행사 관련 뉴스들을 흘려보내다가 가슴이 답답하여 배달호 열사 추모시집을 꺼냈다.

설거지하다 무심히 그의 집을 본 순간/ 티브이 속 기자의 두 팔이 30년 보일러공이었다는/ 그의 집 거실을 뚫고 방으로 꺽인 순간 식탁 놓을 자리도 없다/ 불평하던 우리 집 거실이 출렁출렁 넓어지던 순간/ 그가 분신했다는 공장 콘크리트 바닥과 농성 중인 깃발들을 뚫고/ 좁아터진 집 어딘가에 숨어있을 그의 노모 구부러진 생애가 보이는/ 순간 나는 냉동실에 갇혔다// (…) 얼마를 살았어야 우리 내놓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 방과 방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 방음벽을 치고/ 숨죽여 나누던 사랑의 시간, 그 짧던 모든 밤들이여/ 우린 몰래 사랑했다 가난하여 보일러실 불꽃처럼/ 안으로 타들어가기만 했으니 화석이 되어버린/ 이 몸뚱이는 뉘 육체를 입고 태어날 것인가 다시

김해자, “사랑하기에 충분한 시간” 中, 배달호 노동열사 추모시집 “호루라기”, 도서출판 갈무리, 2003, pp. 18.

기억해야 한다. 2003년 열사 정국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 탄압에 대한 처절한 항거였다. 사람이 먼저라던 대통령에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불순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린 또,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본의 욕심을 보았다. 돈에 날이 밝고, 돈에 해가 지는 자본의 세상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노동자의 처절한 현실을, 그리고 우린 또, 보고 들어야만 했다. 가장 공평해야 할 사법부의 편애함을,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할 정치가의 오만함을, 가진 자의 편에 빌붙어 목숨을 아부하는 언론을 보았다.

객토문학 동인, 같은 책, p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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